— 바운더리 없는 남성성이 안정으로 오해되는 이유
이 글은 요즘 한국 사회에서 반복적으로 관찰되는 한 가지 역설을 다룬다.
미디어에서는 여전히 잘생긴 남성과 이상적인 외모가 숭배되지만, 실제 연애와 관계의 장에서는 오히려 자기 기준과 바운더리가 내부에 단단히 자리 잡지 않은 남성이 더 자주 선택된다는 점이다. 여기서 말하려는 것은 잘생긴 남자가 배제된다는 주장도, 외모가 중요하지 않다는 이야기도 아니다. 문제는 조건이다.
한국 사회에서 남성의 매력은 그 사람이 자기 선택권과 경계를 분명히 가질 때가 아니라, 오히려 그것이 약화되거나 외부 기준에 맡겨져 있을 때 더 안전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즉 매력은 ‘자율성’이 아니라 ‘관리 가능성’과 결합될 때 허용된다. 이 글은 이러한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바운더리 외주화’라는 개념을 사용한다.
이는 어떤 남성이 자기 안에 분명한 기준과 한계를 세우지 못한 채, 자신의 가치와 정체성을 연인 관계나 사회적 정상성에 맡기는 상태를 뜻한다. 이런 남성은 대개 착하고 배려심 있으며 갈등을 만들지 않는 사람으로 보이지만, 이는 성숙함의 결과라기보다 자율성을 드러내면 불이익을 받는 구조 속에서 형성된 생존 방식에 가깝다. 경계가 연인의 반응과 사회의 승인으로 유지될 때, 연애는 사랑의 관계라기보다 자기 존재를 유지하기 위한 장치가 되며, 이별은 관계의 종료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 무너지는 경험으로 다가온다. 그래서 이별 이후에는 과도한 불안, 완벽주의, 집착, 자기검열이 강화되기 쉽고, 억눌린 주체성은 사라지지 않은 채 친구 관계나 익명 공간 등 비교적 안전한 곳으로 이동해 공격적이거나 왜곡된 방식으로 표출된다.
이 구조는 평범한 남성과 외모 조건이 뛰어난 남성 모두에게 작동한다. 평범한 남성에게는 위협적이지 않은 선까지만 자기관리가 허용되고, 잘생긴 남성에게는 키나 체격, 자신감처럼 자율성을 암시하는 신호를 스스로 낮추거나 숨기라는 압력이 가해진다. 그 결과 미디어 속 잘생김은 현실에서 살아갈 수 있는 모델이 아니라 욕망을 대신 소비시키는 격리된 환상이 되고, 다수의 평범한 남성은 열패감을 학습하며, 선택된 일부의 잘생긴 남성은 관계를 유지하는 대가로 점점 자기 자신을 소진시킨다.
이는 개인의 취향을 비난하려는 글이 아니라, 정상성이 어떻게 사람을 평가하고 선택하는 기준으로 작동하는지를 분석하려는 시도다. 이 사회에서 관계의 성공은 점점 개인의 정당성을 증명하는 수단이 되었고, 그 결과 자기 경계를 세우는 일은 성숙이 아니라 위험으로 간주된다. 그래서 자신감이나 진정성, 자기관리 같은 조언이 반복되어도 현실에서는 잘 작동하지 않는다. 구조 자체가 바운더리를 가진 인간을 감당하지 못하는 한, 개인의 주체성은 매력이 아니라 부담으로 분류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