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에서 영어 학습은 오랫동안 ‘정확성’을 중심 가치로 삼아 왔다. 여기서 정확성이란 대체로 문법적 오류의 부재를 의미하며, 이 기준은 영어를 소통의 수단이라기보다 평가와 선별의 대상으로 위치시켜 왔다. 문제는 이러한 기준이 언어 사용 능력의 실질적 향상과 반드시 일치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강력한 규범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를 단순히 학습자의 능력 부족이나 교육 방법의 오류로 환원하기보다는, 왜 이러한 담론이 반복적으로 재생산되는지 그 논리 구조와 사회적 맥락을 분석할 필요가 있다.
제2언어 습득 연구에서는 의미 중심 입력과 실제 사용 경험이 언어 내면화에 핵심적이라는 점이 꾸준히 제시되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영어 학습 담론은 유독 명시적 문법 학습에 무게를 두어 왔다. 이는 영어가 일상적 소통보다는 시험, 자격, 선발 과정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온 사회적 조건과 깊은 관련이 있다. 시험 환경은 발화를 요구하지 않으며, 오류를 허용하지 않고, 정답이 명확히 규정된 응답을 선호한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문법은 의미 전달을 돕는 도구가 아니라, 실수를 피하기 위한 방어 수단으로 기능하게 되었고, 학습자는 발화 이전에 스스로를 검열하는 태도를 습관화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하나의 역설적인 현상이 나타난다. 실제 영어 사용 경험이 적을수록 문법의 중요성을 더 강하게 주장하는 경향이다. 이는 문법이 실질적으로 소통을 가능하게 해서라기보다는, 발화로 인한 실패 가능성을 유예시켜 주기 때문이다. 문법 중심 접근은 “아직 말하지 않아도 된다”는 정당화를 제공하며, 말하지 않음으로써 발생하는 불안과 노출 위험을 합리화한다. 이때 문법은 언어 능력을 향상시키는 수단이 아니라, 불확실성을 통제하기 위한 심리적 장치로 기능한다.
반대로 실제 사용 환경에서 영어를 접한 학습자들, 특히 완전하지 않은 문장으로라도 의사를 전달해 본 경험이 누적된 경우에는 문법 오류에 대한 감정적 저항이 현저히 낮다. 온라인 상호작용, 실시간 채팅, 음성 기반 커뮤니케이션과 같은 환경에서는 문법적 완결성보다 반응성, 맥락 이해, 상호작용의 지속성이 더 중요한 요소로 작동한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학습자는 문법적 오류가 곧 소통 실패나 사회적 배제로 직결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체득하게 되고, 언어는 평가 대상이 아니라 관계를 형성하는 도구로 재위치된다.
그럼에도 문법 중심 담론이 쉽게 약화되지 않는 이유는, 이 문제가 단순한 학습 효율의 문제가 아니라 정체성과 위계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문법 지식은 오랫동안 ‘공부를 잘한 사람’을 구분하는 상징 자본으로 기능해 왔으며, 이는 여전히 사회적 신뢰와 연결된다. 따라서 문법 집착에 대한 비판은 학습 방법에 대한 논의라기보다, 기존의 위계 질서에 대한 도전으로 인식되기 쉽다. 이 지점에서 논의는 경험과 실증의 문제를 넘어, 태도와 도덕성의 문제로 전환되며 감정적으로 격화된다.
결과적으로 필요한 것은 문법의 폐기가 아니라, 문법의 위치 재설정이다. 문법은 언어 습득의 출발점이 아니라, 사용 이후에 점진적으로 정렬되는 요소에 가깝다. 발화 없는 문법은 언어로 기능하지 않으며, 의미 전달을 동반하지 않는 정확성은 소통이 아니다. 영어를 내면화한다는 것은 규칙을 완벽히 설명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 불완전한 표현 속에서도 상호작용이 유지된다는 경험을 축적하는 과정이다. 이러한 경험이 반복될 때 문법은 더 이상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조정되는 감각으로 전환된다.
이 논쟁의 핵심은 누가 더 많은 규칙을 아느냐가 아니라, 어떤 환경이 학습자를 발화로 이끄는가에 있다. 지금까지의 영어 교육 담론은 학습자를 설득하기보다는 침묵하게 만드는 방향으로 작동해 온 측면이 강하다. 영어가 다시 언어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먼저 불완전하게 말해도 괜찮다는 전제가 회복되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