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한때 압축 성장의 모범 사례로 찬사를 받았지만, 오늘날 외부의 시선에서조차 그 화려한 외피 아래에 디스토피아적 현실이 존재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과로사라는 고유명사가 일상화될 정도의 노동 환경, 세계 최저 수준으로 붕괴된 출산율, 교육을 통한 계층 이동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 교육 버블, 소수 대기업에 극단적으로 집중된 기회 구조, 그리고 그 안에서 조용히 삶을 포기하는 ‘삼포 세대’. 이 모든 것은 하나의 영상 요약만으로도 충분히 나열될 수 있다. 영상은 한국 사회가 과거의 고성장 모델을 유지한 채 성숙 사회로 진입했고, 그 결과 개인이 소모되며 미래가 재생산되지 않는 구조에 도달했다고 진단한다. 이는 틀리지 않다. 그러나 이 진단은 여전히 표면에 머문다. 그것은 무엇이 무너지고 있는지는 말하지만, 왜 이 사회에서는 인간적인 행동 자체가 점점 더 불가능해졌는지는 설명하지 못한다.
내가 보기에, 한국 사회의 핵심 문제는 경쟁도, 재벌도, 정책 실패도 아니다. 그 모든 현상 아래에는 더 근본적인 구조가 있다. 이 사회는 개인 간의 바운더리를 인정하지 못하고, 동시에 정상성에 병적으로 집착하는 사회다. 여기서 바운더리가 없다는 것은 단순히 사생활이 보호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개인을 개인으로 분리해 인식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말은 언제나 숨은 의도로 재해석되고, 행동은 선택이 아니라 인격 전체의 선언으로 환원된다. 나는 내가 한 말에 대해서만 책임지는 것이 아니라, 타인이 나에게 덧씌운 해석에 대해서도 책임져야 한다. 이런 사회에서 인간적인 표현은 위험해지고, 침묵과 순응이 가장 합리적인 전략이 된다.
정상성 강박은 이 구조를 완성한다. 정상적이라는 것은 평균적이라는 뜻이 아니라, 통제 가능하고 예측 가능하다는 뜻이 된다. 차이는 조율되지 않고 곧바로 규범 위반이나 결함으로 처리된다. 교육에서 질문은 문제 제기가 되고, 실패는 학습이 아니라 낙인이 된다. 직장에서 의견은 기여가 아니라 정치가 되고, 자율성은 능력이 아니라 리스크가 된다. 연애와 결혼에서 관계는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결함이 없음을 증명해야 통과할 수 있는 시험이 된다. 이 과정에서 사람들은 점점 더 인간을 회피하는 법을 배운다.
성 역시 예외가 아니다. 이 사회에서 성은 친밀성의 언어가 아니라 통제와 승인, 위계의 언어로 작동한다. 욕망은 개인의 것으로 귀속되지 못하고 도덕화되거나 신비화된다. 억압된 욕망은 경험을 통해 성숙하지 못하고 환상 속에서 비대해진다. 그 결과 성은 관계를 깊게 하는 매개가 아니라, 결핍을 보상하거나 사회적 인정을 확인하는 도구로 왜곡된다. 문제는 성욕이 과도해서가 아니라, 인간의 욕망을 개인에게 돌려주지 못하는 사회 구조다.
이 구조는 매력과 남성성의 영역에서 가장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이 사회는 잘생긴 남자를 원한다. 자기관리하고, 노력하고, 규율화된 몸을 가진 남자를 선호한다. 그러나 동시에 그에게 완벽한 통제를 요구한다. 그가 자기만의 기준과 소신을 가지고 선택하는 순간, 즉 주체로서 행동하는 순간, 그는 더 이상 매력적인 대상이 아니다. 불안과 경멸의 대상이 된다. 사회적으로 허용되는 ‘이상적인’ 잘생김이란, 살아 있는 인간이 아니라 영혼이 제거된 이미지다. 온순하고, 예측 가능하며, 선택받았다는 사실에 감사하는 존재. 주체가 아니라 고급화된 객체다.
만약 어떤 남자가 외형, 자기관리, 노력이라는 모든 조건을 충족하면서도 동시에 자기만의 잣대를 가지고 그것을 쉽게 양보하지 않는다면, 그는 이 구조에 편입되지 못한다. 그는 잠시 소비될 수는 있지만, 지속적으로 받아들여지지는 않는다. 문제는 외형도, 성취도 아니다. 주체성 그 자체가 이 사회에서는 위험 요소이기 때문이다. 바운더리 부재와 정상성 강박이 결합된 사회에서, 주체성은 곧 통제 불가능성으로 읽힌다.
K-pop과 한국 드라마는 이 모순을 더욱 공고히 한다. 그것들은 개성 있고 영혼이 있는 남성성을 보여주는 듯 보이지만, 그 주체성은 철저히 닫힌 서사 안에 갇혀 있다. 반항은 연출되고, 고통은 미학화되지만, 현실에서 선택권을 행사하지 않는다. 이 문화는 역설적으로 개성과 영혼마저 안전한 감옥 안에 가둔다. 현실의 인간들은 그 이미지에 자신을 맞추어 축소하거나, 그 이미지와의 괴리 속에서 열등감을 학습한다.
그래서 교육은 무력해지고, 노동은 소모적이 되며, 관계는 시험으로 변하고, 성은 왜곡되며, 매력은 비인간화되고, 미래는 출산 포기로 나타난다. 이 모든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인간을 감당하지 못하는 사회가 선택한 일관된 방향의 결과다. 이 사회의 문제는 사람들이 나약해서도, 이기적이어서도, 욕망이 과도해서도 아니다. 사람다움을 처리할 수 없는 시스템, 개인의 경계를 인정하지 못하고 정상성이라는 이름으로 차이를 제거해온 구조가 문제다.
나는 이 구조를 개인의 노력이나 태도로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 사회에서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 인간성을 숨기고, 주체성을 축소하며, 안전한 상태로 후퇴하는 것이라면, 문제는 개인이 아니라 시스템에 있다. 그리고 그 구조를 직시하지 않는 한, 어떤 정책도, 어떤 도덕 담론도, 어떤 세대 교체도 이 반복을 멈추지 못할 것이다. 이 사회가 직면한 위기는 경제의 위기가 아니라, 인간을 인간으로 다루는 방식의 위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