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이 허용되지 않는 사회

ForeverDisn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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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사회적 존재라는 명제는 오랫동안 의심받지 않아 왔다.
관계와 신뢰, 상호성은 공동체를 유지하는 기본 조건으로 간주되었고,
개인은 타인과의 연결 속에서 자신을 형성한다고 여겨졌다.

그러나 오늘날 이 명제는 더 이상 자명하지 않다.
특히 즉각적인 평가와 개입이 일상화된 사회에서는,
관계는 안정의 기반이 아니라
관리해야 할 위험으로 인식되기 시작한다.

이러한 환경에서 신뢰는 점점 비용이 높은 선택이 된다.
호의는 축적되지 않고,
기대는 곧 실망의 가능성으로 환원된다.
그 결과 개인은 특정한 방식의 학습을 반복하게 된다.

기대하지 않는 법,
쉽게 믿지 않는 법,
그리고 가능하다면 먼저 선을 긋는 법이다.

이 변화는 개인의 도덕적 타락이라기보다
사회적 조건에 대한 합리적인 적응에 가깝다.

즉각적인 평가와 개입이 보상되는 사회에서는
특정한 인간형이 구조적으로 강화된다.

이 인간형의 자아는 내부에서 안정적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대신 타인의 관심이나 분노,
동조되거나 배제되는 경험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반복적으로 확인한다.

침묵은 설명의 부재로 간주되고,
설명하지 않음은 곧 거부로 해석된다.
그래서 관계는 대화의 공간이 아니라
판정의 장에 가까워진다.

이것은 성격의 문제가 아니다.
이렇게 반응하는 쪽이
더 빠르게 선택되고, 더 자주 보상받는 구조의 결과다.

그러나 동일한 조건 속에서도
전혀 다른 태도를 선택하는 인간형은 여전히 존재한다.

이들은 인간이 본질적으로 고립된 존재임을 받아들인다.
누구도 대신 살아줄 수 없고,
누구도 완전히 이해해 줄 수 없다는 사실을 전제로 삼는다.

이 인식은 냉소로 이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관계를 구원이나 증명의 장으로 만들지 않게 한다.
타인을 통해 자신을 완성하려는 기대를 내려놓을 때,
관계는 비로소 유지 가능한 형태를 갖는다.

이 관점에서 관계는 신성한 유대가 아니다.
관계는 명확한 경계를 전제로 한 상호작용에 가깝다.
그래서 관계는 종종 ‘계약’에 비유된다.

이 계약은 계산을 의미하지 않는다.
무언가를 받아냈는지, 손해를 보았는지를 따지는 언어도 아니다.
다만 어디까지가 나의 책임이고,
어디부터는 타인의 영역인지
선을 분명히 하겠다는 선언에 가깝다.

이런 태도는
“받았으면 반드시 돌려줘야 한다”는 윤리를
도덕적 의무가 아니라
자기 일관성의 문제로 바꾼다.

베풂은 관계를 붙잡기 위한 전략이 아니며,
감정을 증명하기 위한 도구도 아니다.
관계가 끝나더라도
스스로에게 미지급된 채무를 남기지 않기 위한 선택이다.

이러한 인간형은 종종 차갑거나 계산적으로 오해된다.
그러나 이는 타인을 신뢰하지 않겠다는 선언이 아니다.
타인에게 자신의 삶 전체를 위임하지 않겠다는 태도에 가깝다.

고립을 인정하기 때문에
과잉 연결을 거부할 수 있고,
그로 인해 관계가 쉽게 폭력으로 변하는 순간을 피할 수 있다.

반대로,
끊임없이 응답과 태도를 요구하는 사회에서는
이런 인간형이 불편한 존재가 된다.

침묵은 해명을 요구받고,
여백은 의심의 대상이 되며,
말하지 않음은 무책임으로 오독된다.

그래서 사회는
항상 반응하는 사람을 성숙하다고 부르고,
즉각적으로 판단하는 태도를 솔직함으로 포장한다.

이 지점에서 많은 갈등은
“가치관이 안 맞았다”는 말로 정리된다.
“끼리끼리 만난 것뿐”이라는 문장이
모든 불편함을 덮는다.

그러나 이 말은
현상을 이름 붙일 뿐, 원인을 설명하지 않는다.
왜 관계가 이렇게 빠르게 판정되고,
왜 감정과 합리성이 동시에 실패하는지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는다.

결국 문제는 개인의 성격이나 도덕성이 아니다.
누가 더 예민했는지,
누가 더 이성적이었는지도 핵심이 아니다.

문제는
어떤 인간형이 반복적으로 만들어지고,
어떤 인간형이 소모되는 구조 위에 우리가 서 있는가다.

인간은 사회적 존재다.
그러나 모든 관계가 생존 조건이 되는 것은 아니다.
관계는 구원이 아니며,
윤리는 거래가 아니고,
고립은 실패가 아니다.

침묵이 허용되지 않는 사회에서
고립을 인정하는 선택은
도피가 아니라 하나의 윤리적 전략이다.

의미는 강요될 수 없고,
존엄은 증명될 수 없으며,
인간은 끝내 설명되지 않는 존재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

어쩌면 이 태도만이
관계가 시험이나 판정으로 변해버린 시대에서
인간을 인간으로 남게 하는
가장 조용하고도 단단한 저항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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