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이 확고해졌다는 말은 종종 오해를 낳는다. 확고함은 흔히 단호함이나 자기주장이 강해진 상태로 뭉뚱그려 해석되지만, 실제로는 전혀 다른 두 가지 태도를 포함한다. 하나는 자기 책임과 경계를 분명히 하는 확고함이고, 다른 하나는 타인의 영역에 개입하며 기준을 부과하는 확고함이다. 이 둘은 겉으로 보기엔 비슷해 보일 수 있으나, 사회적 의미와 결과는 정반대다.
자기 책임형 확고함은 자신의 감정과 행동, 대응 범위를 스스로 한정한다. 필요 이상의 설명을 하지 않고, 감정을 과잉 소비하지 않으며, 타인의 불안을 대신 처리하지 않겠다는 태도다. 반면 지시적 확고함은 관계의 합의 여부와 무관하게 타인에게 행동 기준을 요구하고, 상황을 통제하려 한다. 이 차이는 단순한 성격 차이가 아니라, 관계를 개인 대 개인으로 보느냐, 집단 내 위치와 역할로 보느냐의 차이다.
이 구분이 특히 선명해지는 지점은 오랜 공백 이후의 재회다. 관계가 지속되지 않았던 시간은 사회적으로 공백이 아니라 단절에 가깝다. 이런 상황에서 일반적으로 요구되는 최소한의 절차는 인사와 안부, 관계 재정렬이다. 그러나 일부 문화적 맥락에서는 이 과정이 생략된 채 과거의 위치 기억이나 집단 규범이 즉시 작동한다. 그 결과, 오랜만에 만난 개인에게 안부나 탐색 없이 곧바로 행동 교정이나 지시가 가해진다. 이는 친밀함의 표현이 아니라, 관계를 개인이 아닌 집단의 부속 위치로 인식하는 사고방식의 발현이다.
문제는 이런 행동이 종종 ‘확고함’이나 ‘주도성’으로 포장된다는 점이다. 하지만 타인의 동의 없이 기준을 적용하는 태도는 확고함이 아니라 개입이며, 책임의 명확화가 아니라 권한의 착각이다. 자기 경계를 세우는 행위는 자신의 행동을 제한하지만, 지시적 개입은 타인의 선택지를 제한한다. 이 둘을 동일한 성숙으로 취급할 때, 사회는 경계를 지킨 사람과 경계를 침범한 사람을 구분하지 못하게 된다.
한국 사회의 집단주의적 관계 규범은 이 혼동을 더욱 강화한다. 관계는 개인 간 합의라기보다 집단의 분위기와 암묵적 역할에 의해 유지되고, 질문과 지시는 특정인을 명확히 호명하지 않은 채 공기 중에 던져진다. 이 환경에서는 개인이 “이것은 내 책임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순간, 관계를 거부한 사람으로 해석되기 쉽다. 반대로 인사와 안부를 건너뛰고 즉각적인 개입을 하는 태도는 적극성이나 사회성으로 오인된다.
이 글이 지적하려는 핵심은 개인의 성격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확고함의 기준이 뒤집혀 있다는 점이다. 자기 책임을 분명히 하고 타인의 영역을 존중하는 태도는 불편한 사람으로 분류되고, 관계의 합의 없이 기준을 들이대는 태도는 주도적인 사람으로 받아들여진다. 이 전도는 단지 관계 갈등을 넘어, 사회 전반의 의사결정 방식에도 영향을 미친다.
AI 시대에 인간에게 요구되는 역량은 타인을 흔드는 감정 동원이 아니라, 책임의 귀속과 경계 설정이다. 누가 질문의 대상인지 명확히 하고, 누가 결정의 책임을 지는지 분리하는 능력은 앞으로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많은 사회적 장면에서, 자기 경계를 세운 개인보다 타인의 영역에 개입하는 사람이 더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
이 글은 어느 한쪽을 도덕적으로 단죄하려는 목적을 갖지 않는다. 다만 확고함이라는 이름 아래 무엇이 보호되고 무엇이 침범되고 있는지를 구분해 보자는 제안이다. 인사 없이 시작되는 지시, 합의 없이 작동하는 기준, 개인 대신 집단을 먼저 호출하는 질문 방식이 과연 성숙한 사회의 모습인지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설득은 상대를 몰아붙이는 일이 아니라,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온 기준을 잠시 옆으로 옮겨보는 데서 시작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