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는 관계 맺는 방식부터 왜곡되어 있다
화요일, 4월 21,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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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를 설명할 때 우리는 자주 경쟁, 입시, 부동산, 세대 갈등 같은 큰 단어를 먼저 떠올린다. 하지만 더 먼저 봐야 할 것이 있다. 한국 사회는 관계 맺는 방식 자체가 비틀려 있다.
이 비틀림은 거창한 담론보다 훨씬 작은 장면에서 먼저 드러난다. 낯선 공간에서 먼저 인사하는 사람, 부딪히면 먼저 “죄송합니다”라고 말하는 사람, 사소한 호의에도 “감사합니다”를 분명히 표현하는 사람. 원래 이런 행동은 문명사회의 기본이다. 나는 당신을 위협하지 않으며, 이 공간을 함께 쓰는 사람으로 인정한다는 신호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 사회에서는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이런 기본적인 예의를 먼저 보이는 사람이 종종 더 빨리 소모된다. 먼저 다가간 사람은 더 많이 맞춰야 하는 사람이 되고, 먼저 사과한 사람은 더 많은 책임을 떠안는 사람이 되며, 먼저 감사한 사람은 더 낮은 위치에 있는 사람처럼 읽히기 쉽다. 예의가 상호성으로 돌아오지 않고, 추가 부담으로 바뀌는 것이다.
이 점에서 최근 온라인의 어떤 글은 꽤 흥미롭다. 그 글의 화자는 여성을 비판한다고 믿는다. 여성은 남자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를 원한다는 식으로 말하며, 여성을 의존적이고 승인에 기대는 존재로 묘사한다. 표면만 보면 흔한 여성 비난 글처럼 보인다. 그런데 조금만 거리를 두고 읽으면 전혀 다른 것이 보인다. 그 글은 여성의 본질을 폭로한 것이 아니라, 한국 사회의 관계 구조 자체를 폭로하고 있다.
왜 그런가. 그 글이 반복해서 묘사하는 세계에서는 누구도 상대를 온전한 인격으로 보지 못한다. 사람은 사람이 아니라 보호자, 승인자, 자원, 지위, 역할, 기능으로 읽힌다. 관계는 만남이 아니라 배치가 되고, 친밀감은 이해가 아니라 관리가 된다. 여성만 그런가. 전혀 아니다. 남성도 다르지 않다. 성인이 된 뒤 남성들이 새 친구를 만들기 어려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많은 경우 남성들은 자신을 흔들지 않는 사람, 정서적 비용이 적은 사람, 지금 있는 공간을 매끄럽게 유지해주는 사람을 선호한다. 그래서 회사나 학교나 모임 같은 공간 안에서는 친한 것처럼 보여도, 그 공간을 벗어나면 쉽게 흩어진다. 서로를 본 것이 아니라, 같은 시스템 안에 함께 놓여 있었을 뿐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그 글의 화자는 여성을 비판하면서 동시에 남성도 폭로한다. 더 정확히는, 한국 사회 전체를 폭로한다. 여성은 보호와 승인 쪽으로, 남성은 기능과 안정 쪽으로 기울어져 있을 뿐, 둘 다 상대를 인격보다 역할로 읽는 데 익숙하다. 그러니 문제는 어느 한 성별의 본성이 아니라,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못하게 만드는 관계의 문법에 있다.
이 구조는 잔인하다. 먼저 인간적으로 행동하는 사람을 먼저 닳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사람이 지쳐서 더 이상 먼저 인사하지 않고, 먼저 풀어주지 않고, 먼저 사과하지 않게 되면 이번에는 “왜 저렇게 변했지?”라는 시선을 받는다. 소진의 원인은 지워지고, 남은 방어성만 문제로 취급된다. 결국 그 사람은 친절한 사람에서 지친 사람이 되고, 지친 사람에서 이해할 수 없는 타자가 된다.
그래서 한국 사회의 관계 문제는 단순히 예절의 문제가 아니다. 더 근본적인 문제다. 우리는 상대를 마주치는 순간부터 그를 한 사람의 세계로 보기보다, 내 삶에서 어떤 기능을 하는 존재인지부터 계산한다. 그러니 사랑도 피곤하고, 우정도 오래 못 가고, 직장도 늘 소모적이다. 관계가 깊어지기 전에 이미 역할이 먼저 굳어버리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를 바꾸는 일은 거대한 구호에서 시작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더 작은 데서 시작될 것이다. 낯선 사람에게 먼저 인사하는 일, 실수했을 때 먼저 사과하는 일, 호의를 받았을 때 분명하게 감사하는 일. 중요한 것은 그 행동 자체보다, 그런 행동이 손해가 아니라 상호성으로 돌아오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건강한 사회는 먼저 인간적인 사람이 먼저 소모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사람 덕분에 공간 전체가 조금 더 인간다워진다. 한국 사회가 정말 바뀌어야 한다면, 제도 이전에 먼저 이 질문부터 던져야 한다.
우리는 왜 이렇게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못하게 되었는가.
아이러니하게도 이 질문을 붙잡게 된 것 자체가 이미 한국 사회의 익숙한 관계 문법에서 조금 비켜서 있다는 뜻인지도 모른다. 애초에 저 온라인 글을 단순한 여성 비난이 아니라, 한국 사회 전체의 관계 구조를 드러내는 텍스트로 다시 읽을 수 있었다는 것부터가 그렇다. 영어는 내게 새로운 표현만 준 것이 아니었다. 한국 사회를 낯설게 볼 수 있는 거리, 그리고 사람을 사람으로 대하는 다른 관계의 감각까지 함께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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